추태의 막장을 몸소 보여준 정치꾼들.ㅉㅉ 밥은 먹고 댕기냐?
이곳 아르헨티나 정치를 보고 있자면 답답함을 떠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정치판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권력과 당의 이익을 추구하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곳에서만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것 같다.인터넷뉴스나, 고국 정치소식을 접하다 보면 "대한민국 정치수준은 아직 멀어구나"하는 생각과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라는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을 할것이다.
여러 비리사건과, 날치기 통과,폭력이 난무하는 저질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이것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꾼들인가? 라는 의심마저 들게한다.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종 비리,부패 사건이 연일 끈이지 않고 터지고 있는 가운데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까지 나오니 서민들의 불만과 어려움을 이해 할수 있다.
허구헛날 눈치보기와 자기 이해타산의 정략만 있을뿐 민생법안 처리와 개혁법안은 등한시 되고 꼭 기사화 되거나 비리가 밝혀지면 허둥지둥 날치기 통과하는 이런 한심한 정부를 보는것도 이젠 신물이 날정도다. 정치인들은 왜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비판을 받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바른정치인,훌륭한 일꾼, 나아가 선진국가가 되는지 돌머리가 아닌 이상 서민들의 문제를 머리 박고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져 정말로 민의를 반영하는 선량이 되도록 다짐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것이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침 튀겨가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부 몰지식한 정치꾼과 서민의 고충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개인의 부(富)만을 쫒아 가는 돼먹지 못한 정치꾼들에게 훌륭한 정치인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준 정치인이자 한나라의 대통령이였던 인물을 알리고자 함이다. 잘 보고 깨우치고 느끼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Luiz Inácio Lula da Silva,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1945년 10월 27일) 는 브라질의 전 정치인으로, 대외적으로 룰라(LUL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후 2003년 브라질의 제 35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2006년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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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는 1945년 10월 6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 주의 궁벽한 농촌마을 까에떼스(caetes)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본명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로 룰라는 어릴 적부터 부르던 애칭이었다. 룰라라는 이름은 성인이 된 후 정식 이름에 덧붙였다. 대가족을 거느렸으나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루이스와 다른 가족을 데리고 상파울로 주 산투스로 이주했고, 곧 상파울루 시로 옮겼다. 루이스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0세가 되어서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때까지 문맹 상태였다.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학교를 4학년 때 그만두어야 했으므로 초등학교 4학년의 학력이 배움의 전부이다. 그 후 그는 상파울루의 거리에서 행상과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다가 금속공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됐다. 그는 금속 공장에 다니면서 기술 학교에서 일을 배웠고, 18세 때는 금속을 깍아서 가동하는 시술인 선반 자격증도 취득했으나,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왼쪽 새끼 손가락을 잃었다.
산업 재해로 손가락을 잃은 것을 계리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됀다. 그는 공장에서 자신의 지위를 차츰 확보해 나가면서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됐고, 1968년에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부인은 간염에 걸려 그 다음 해 뱃속의 아기와 함께 치료도 못 받고 죽었는데, 미리 아기 옷을 준비할 만큼 부인의 출산을 기다리던 룰라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부인의 병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악화된 것으로 여겨졌고, 적절한 치료만 받았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것이었기에 룰라는 노동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노조의 활동가가 됐다. 1974년 노조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여 사무원 마리자 레티시아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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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전에 룰라는 노동운동 지도자였다. 선거를 위한 캠페인에서 그는 브라질의 외채 상환을 그의 공약에서 포기하겠다고 선언 하므로 경제학자와 사업가, 은행들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범적으로 외채를 줄여감으로써 현실적인 외채정책을 실시하여 이들의 걱정을 지워 버렸다. 사실 룰라가 정권을 잡았을때 부자들은 다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유야 당연히 노동자 지도자 출신이다보니 자기들한테 피해가 올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룰라는 부자들을 안심시키고 가난한 자를 위한 정책을 이해시켜 양쪽 모두를 만족시켰다.
200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 당선
집권 1기 (2003 ~2006년)
집권 2기 (2007 ~ 2010년)
집권 기간동안 룰라는 복지 프로그램을 최우선적으로 실시했다.스스로가 어려운 삶을 겪어봐서 누구보다 가난한자와 노동자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룰라는 가난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추진해 나아갔다.
또한 사회개발 기아박멸 외에 사회복지, 토지 개혁 성공등으로 재임기간동안 브라질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화됐고, 세계 8위 경제국으로 성장했다. 또한 빈민들에 대한 식량무상제고,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빈곤한 노동빈곤층의 임금향상,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의 경우 취학을 전제로한 생계비 지원등 복지정치는 이루 말할수가 없을 정도이다. 아울러 룰라는 보수 세력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했고, 우파정당과 정책연합을 구성하는 등 반대 성향의 세력들과의 소통에도 노력했다. 퇴임을 앞둔 룰라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지지율이 90%이상 이었다는 것이 양쪽 (부자와 가난한 자) (여당과 야당) 모두를 위한 정책을 폈음을 의미한다.
[위키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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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같이 지역주의, 인맥주의,학벌주의 같은 썩어빠진 사회에서는 절대로 재현 될수 없는 상황이다.룰라는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갈등을 하는지를 과감히 부디쳐 해결하는 타고난 리더이자 투쟁가이다.
룰라 대통령도 대단하지만 그런 인생이 나오게 뒷바침해주고,지지해주고, 이해해준 브라질 국민도 멋진 국민이다. 참고로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개최하고 2020년에 올림픽도 개최하기로 되어있다.
반대로 19대 국회와 올해 새로 나올 대통령은 진심으로 '무엇이 국익을 위해 나은것인가''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귀 기울려 똑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고, 왜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았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것이다.
눈물의 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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