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집안정리를 하면서 우연히 예전에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 연애시절에 보냈던 편지들을 찾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facebook, twitter가 활성화 되지 않은 시절이라 직접 편지를 주고 받고 했었다. 지금은 연락이 끈긴 친구도 있지만 다시 찬찬히 읽어보며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떤이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친구가 많은걸 자랑삼고 다니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때 어머님 혼자 애도의 글을 남겼다는 모 기사를 본적이 있다. 정말 내 주위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살다보면 딱히 기억하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첫사랑의 여자나 회초리를 드시던 스승도 그렇고, 돌아가진 지인 역시 그렇다. 혹은 돌아가신 주위 가족또한 그렇다.
자신은 몰랐어도 은연 중 자신의 인생에 있어 특별하게 기쁨이나 슬픔으로 자극이 되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구의 기억 속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 함께하는 동안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기억조차 하기 싫고 하루속히 잊고 싶은 사람보다, 생각만 떠올려도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남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헤어지고, 떠나버리면 아무런 상관없이 깨끗해져야 하는데, 사람의 관계란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좋은 기억이나 아름다운 추억이 되면 좋지만 그것이 아픔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남겨진 사람에게는 고스란히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버린다. 뒤돌아서서 아무 일 없듯이 툭툭 털어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 미련이라는 꼬리를 냉정하게 자르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게 된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쉬움도 아닌 마음속에 남은 자신에 대한 쓸쓸함일 것이다. 연민이라고 말해야 하나?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후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기 싫어 늘 새로운 길을 찾아가지만, 연어가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것처럼,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은 언제나 관념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동선을 따라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만남이 되고, 이별이 되고, 또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기도 하였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배회하게 된다.
좀더 나은 꿈의 출발점도 그 길이였으며, 좌절의 고통으로 힘들어 방황하다 돌아온 곳도 그 길이었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거나, 멀리서 바라만 보는 짝사랑이나, 그사람을 존경하는 마음도 그 길이고, 사랑을 묻었던 곳도 그 길이다.
원망과 질투와 눈물과 아픔이 뒤엉켜 인생이 되어지 그 길은, 그저 운명이 되어, 내가 사랑하고 원망했던 모든 사람들은 추억이란 상자에 담아, 내가 그리워할 때마다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요즘은 과거에 주고 받았던 편지들의 친구들과, 내가 아프게 떠나버렸던 옛 애인들이 많이 생각이 난다. 철이 없던 시절에 못된 행동들과, 송곳같은 날까로운 말들이 이제야 가슴 가득 아픔으로 다가온다. 내가 늦게 깨닮음을 알은것도 후회되고, 젊어서는 다 상대방의 못남이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친구로서 나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하나 둘 마치 새로운 세계를 접하듯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왜 그 시절에 나에게 그랬었는지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다.
이세상에 가장 슬픈 건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인것 같다.
기쁘나 슬프나 함께 웃고 울어줄 사람이 있어야, 감정이란 것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음은 너무나 큰 행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은 그만큼 자라지 않을까 싶다.
"곁에 있을때 최선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라"는 구절이 유난히 생각나는 밤이다.
살다보면 딱히 기억하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첫사랑의 여자나 회초리를 드시던 스승도 그렇고, 돌아가진 지인 역시 그렇다. 혹은 돌아가신 주위 가족또한 그렇다.
자신은 몰랐어도 은연 중 자신의 인생에 있어 특별하게 기쁨이나 슬픔으로 자극이 되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구의 기억 속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 함께하는 동안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기억조차 하기 싫고 하루속히 잊고 싶은 사람보다, 생각만 떠올려도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남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헤어지고, 떠나버리면 아무런 상관없이 깨끗해져야 하는데, 사람의 관계란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좋은 기억이나 아름다운 추억이 되면 좋지만 그것이 아픔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남겨진 사람에게는 고스란히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버린다. 뒤돌아서서 아무 일 없듯이 툭툭 털어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 미련이라는 꼬리를 냉정하게 자르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게 된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쉬움도 아닌 마음속에 남은 자신에 대한 쓸쓸함일 것이다. 연민이라고 말해야 하나?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후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기 싫어 늘 새로운 길을 찾아가지만, 연어가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것처럼,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은 언제나 관념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동선을 따라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만남이 되고, 이별이 되고, 또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기도 하였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배회하게 된다.
좀더 나은 꿈의 출발점도 그 길이였으며, 좌절의 고통으로 힘들어 방황하다 돌아온 곳도 그 길이었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거나, 멀리서 바라만 보는 짝사랑이나, 그사람을 존경하는 마음도 그 길이고, 사랑을 묻었던 곳도 그 길이다.
원망과 질투와 눈물과 아픔이 뒤엉켜 인생이 되어지 그 길은, 그저 운명이 되어, 내가 사랑하고 원망했던 모든 사람들은 추억이란 상자에 담아, 내가 그리워할 때마다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요즘은 과거에 주고 받았던 편지들의 친구들과, 내가 아프게 떠나버렸던 옛 애인들이 많이 생각이 난다. 철이 없던 시절에 못된 행동들과, 송곳같은 날까로운 말들이 이제야 가슴 가득 아픔으로 다가온다. 내가 늦게 깨닮음을 알은것도 후회되고, 젊어서는 다 상대방의 못남이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친구로서 나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하나 둘 마치 새로운 세계를 접하듯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왜 그 시절에 나에게 그랬었는지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다.
이세상에 가장 슬픈 건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 것 인것 같다.
기쁘나 슬프나 함께 웃고 울어줄 사람이 있어야, 감정이란 것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음은 너무나 큰 행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은 그만큼 자라지 않을까 싶다.
"곁에 있을때 최선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라"는 구절이 유난히 생각나는 밤이다.
나와 내 관습과 나의 모든 정서를 아끼듯 내 절친들의 편지나 댓글도 아끼게 됩니다.
답글삭제댓글이나 편지는 나의 혈맥, 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