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글

2012년 9월 29일 토요일

나의 이야기---상처와 우정

전에도 잠깐 언급 했지만 나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냐를 보고 나를 판단한다.
만나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거나, 술만 마셔대는 주정뱅이냐 아니면 다른 상식밖의 행동을 할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나도 그런부류의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보는 시선이 틀린것만은 아니다. 나 또한 인간관계를 맺을때는 그사람의 주변인물을 둘러 보니 당연한 이치다.

오래전부터 알고 왔던 아주 친한형들이 있는데, 절제를 하지못해 속상한 일들이 한두번이 아니다. 밤 늦게까지 마신다거나, 어떤 대화를 하려고 할때 "너나 잘해라" " 그냥 아무말 없이 마시자" 등 이런식으로 사람을 무시하다던지, 절제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보면 회의를 느낀다. 사실 그형들이 너무나 좋지만, 과연 이자리를 계속 유지해야하는지, 냉정하게 관계를 끈어야 하는지 나는 지금 고민중이다. 사실 아무 의미없는 자리는 결코 나의 인생에도 유익하지 못할뿐더러 나아가 도태되는 일까지 생길 수가 있다. 내가 변하던지 그사람들이 변해야 하던지 둘중 결단을 내려야 할때가 온것이다. 사정을 잘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고 좋은게 좋다고 너무한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속사정을 잘모르고 하는 말 일것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아마 남에게 믿음에 대한 배신을 당했을때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의 또다른 이중성을 보았을때인 것 같다.
그동안 서로를 믿고 수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했는데, 한 순간 자신의 이익에 의해, 그 동안의 믿음에 등 돌리는 모습은 바로 충격 자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하루 이틀 알 던 사이가 아니라면, 그동안 함께했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정도 쌓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 정에 대한 믿음을 재단하려면 반드시 그 크기만큼의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설령 증거가 있다하더라도, 최소한 왜 그래야만 하는지 당위성을 명확히 한 다음에 처신하는 것이 옳다.
밑도 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믿음을 재단하려 한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가 섭섭한 감정 없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요즘 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다. 힘이 생기는 순간 그동안 자신을 위해 힘과 노력과 청춘을 보태준 사람의 노고를 헌신짝처럼 버려 버린다. 그것이 살기 위한 방편이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조금 더 보태기 위해 그 더러운 일을 한다. 그저 그런 사람이면 그려련히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믿음이 출발점이 되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사실로 인해 발목이 잡힌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그런 관계를 유지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상대도 노력을 해야한다고 본다. 서로가 함께 정을 나눴으면 믿음을 깨는 것도 최소한 함께 해야 하지 않는가?

요즘은 친구가 그립다. 너무나 변해만 가는 세상속에서 같이 나눌수 있는 그런 친구들, 말을 안해도 눈빛만으로도 내 마음을 알아채는 그런 친구들이 그립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질 뿐이다.
조언과 충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선택은 오로지 본인의 몫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변하지 않고 어릴적 그마음 그대로 갖고 있길 바라는 내가 이상한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좋은 친구, 함께 있는 것만으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한 스스럼없이 마음이 공유함을 느끼게 되고, 이런저런 잡다한 말들을 쏟아내게 하는 친구들이 나는 지금 너무나 고프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서 만난 사람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한 친구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난 지금 세상에 의해 믿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는 바로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감기 같은 것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슴에 담아둘 수 밖에 없다.
하루빨리 시간에 가리워지고 엻어져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의 이야기---어린아이 같은 나



남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바라보는 나는 항상 어린 아이와 같다.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는 항상 옳은 듯 행동하지만 실상 마음으로는 항상 투덜거린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마음이 있었는데 갈수록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기 일쑤이고, 때때로 마음속에 분노를 참지 못해 폭팔해 버릴때도 있다. 마치 나는 지극히 정상인데 세상이 나에게 태클을 거는것 같고, 내가 생각한 상식 밖의 일들을 볼때면 죄다 무식한 사람으로 바라볼려는 삐뚜러진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려고 공연히 화난 척 토라지거나 삐친 모습을 보인다.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면 함께 즐거울 수 있는데 쓸데없는 자존심과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도 같다.

말은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슨 큰비밀도 아닌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면 그만인 것을 마치 상대방은 나의 말에 동의해 주고 내 말을 무조건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어찌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내생각은 담아두면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없지 않는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닫쳐진 마음의 문을 열기를 두려워하는 마냥 자기말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 감정의 변화가 적어야 하는 법인데 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지나쳐도 좋은, 별 것도 아닌 작은 나쁜 말들을 참지 못하고 마음 안에 꾹꾹 늘러 담고는 한다. 어쩌면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말인데도, 자신을 건드리는 것처럼 화를 내고 혼자 후회라는 내 자신에세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 외톨이가 되어 홀로 외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처럼 나의 마음은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다.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를 바란다. 마음을 알아달라고, 나의 사랑을 알아달라고, 나의 힘든 처지를 헤아려달라고 무언의 투정을 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부터 먼저 배려 받기를 원하곤 한다. 갈수록 마음 씀씀이가 왜 이리 좁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사탕 하나 더 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내나 부모님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사이도 아닌데 괜히 줄다리기 하려고 한다. 마음에 들어야 눈에 거슬리는 것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기분 좋은 날이면 그냥 넘어갈수 있는 일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면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은연 중에 오만짜증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요즘은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곤 한다.
그런데 희안한것은 이런 나의 단점들을 내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화가 나면 도통 감정 조절을 못해 큰 낭패를 보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그리 고민하지 말고 쉽게쉽게 마음을 터놓으면 될 터인데,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의 마음만 헤아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나의 이야기---가슴이 답답하다.

얼마전 어머니랑 다툼이 있었다.. 서로간에  이해부족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커다란 오해와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게 아닌데 어머니는 자꾸 그렇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내 속마음을 열어보이고 싶다.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을 해야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서러움이 남는건 나도 어쩔 수가없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실까? " 하는 생각에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이럴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하기싫은 일을 꼭 해야할 때와 가기 싫어도 꼭 가야할 때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진리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하기 싫은 일은 피하고 싶은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프거나 초청했을 때 왠지 부담이 가는 경우가 종종있다. 형제자매라 해서 소위 말하는 똥집이 다 맞는 것이 아니고 저마다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틀리기 때문이고, 친구라 해서 무늬만 친구지 다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지 자신의 잇속만 챙기고, 돈 드는 일이나 힘들일에는 나 몰라한다. 꽁짜로 먹는 일이나 평소 집안일에 코빼기도 안비추던 사람이 자신의 경조사에는 염치불구 하고 사둔에 팔촌까지 초청장을 보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을 봐서는 안가겠지만 다른 형제나 친구의 얼굴을 보고 기분은 내키지 않지만, 체면치레 할 때는 정말 "사람이 사람구실하고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살면서 마음에 가장 큰 상처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 받는다. 그것은 믿음과 정이 큰 만큼, 배신을 당했을 때의 마음의 상처 역시 믿음과 정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크다.

내가 가만히 보니 형제자매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든 서로 양보하고 내 것 네 것 없이 지내지만, 결혼과 더불어 세대가 구성되고 아이를 낳게되어 자신의 몫으로 써야 할 부분이 생기는 순간 부터는, 우애의 틈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예전에처럼 끈끈한 관계가 약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이 당연하 일인데도 형제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없지않아 강요하거나 강요 당하는 것도 있겠지만, 명절이나 가족행사와 같이 돈과 몸이 함께 해야할 일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한 두번 외면하게 되면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중년이 되면 가장 큰 일이 아이들의 교육이나 성가시키는 문제와 연로한 부모의 부양문제가 가장 큰 부분이다. 그 중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어느 한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형제자매 모두가 십시일반하고, 부모의 대소사를 몸으로 떼워야 되는데 언제나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사람에게서 무슨 정을 기대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대부분 부모에게는 알랑거려 점수를 따고, 몸으로 하는 일이나 돈이 드는 일은 뒤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만 앞세우고 온통 자신이 다한 것처럼 포장하여 공을 내세운다. 네가 하는 일은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이고 자식의 도리라면서, 자신이 해야 할 사정이 있을 때는 핑계를 대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유도하는 얌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가족도 이러할진대  친구들은 오죽 하랴...

부모를 모시고 친구들을 위하는 일에 무슨 순서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형제나, 부모나, 친구가 최소한 마음만은 알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살면서 내가 할 일에 최상은 못되더라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안보여지니 조금은 서러운 마음이다.
부모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마음은 매일이라도 찾아가서 모든것을 덮고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떠들고 어울려 함께하는 것이 도리라 하는데, 몸은 천근만근 누가 잡기라도 한 것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원인은 항상 속 좁은 나에게 있지만, 나 역시 부모에게 사랑받고 형제에게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사람임에는 틀림없기에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혹여 형제자매나 친한 사람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용기를 내서 찾아가봄은 어떨까 싶다.
마음의 벽은 쌓을수록 더욱더 외로워지는것은 자신이기에....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나의 이야기---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뱁새가 황새 쫒아가려면 가랑이 찧어진다> 이런 속담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뱁새는 몸길이가 13Cm정도 되는 작은 새다. 반면에 황새는 날개의 길이만 66Cm 정도로 뱁새의 5배가 넘는 큰 새. 이 속담은 다리가 짦은 뱁새가 큰 황새처럼 걸으려고 하니 다리가 찢어지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이 한다고 하여 제 힘에 겨운 일을 억지로 해 나가다가는 도리어 큰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남이 사니까 따라 사는 소비, 남이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가져야겠다는 욕심, 계획에 없던 물건들을 덜컥덜컥 사게 되는 충동구매,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고 싶은 과시욕.... 이들 모두는 자신의 소득이나 형편은 고려하지 않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소비행위의 예들이다. 다리가 짦은  뱁새가  다리가 긴 황새 흉내를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졌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뱁새들이 있다.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개인신용 불량자는 600만명에 이르고, 그로인한 다양한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게 한다.

자기의 소득이나 형편에 맞게 물건을 사고, 돈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수에  맞는 소비! 이는 개인, 가정, 사회를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도 풍요롭게 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요즘 무분별하게 <남들이 하니깐> 나도 안하면 뒤쳐질거라는 불안함, 혹은 꿀리려하지 않는 과시욕 때문에 힘들게 사는 친구들을 보곤 한다.그것이 꼭 물질적으로만 제한되어 있지는 않다.
며칠전 이민친구들과의 모임에 다녀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참 정말 내 인생을 위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강제로 떠민 것도 아닌데, 그저 남이 하니까, 친구들에게 꿀리기는 싫으니까, 못이기는 척 따라 했었지 않나 싶다.중학교를 마치고, 이민와선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대학교에 갈 때도 그랬다. 나의 적성이나 꿈보다는 남들의 의견들에 따르곤 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는데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무엇인가 목표의식을 갖고 끝까지 죽기 살기로 전력을 다해도 될뚱말뚱인데 나에겐 그런 악바리 근성이 모자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건 불혹(不惑)을 얼마남지 않은 지금도 그렇다.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만 한다.. 혹여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 있더라도 큰 손해가 아니면 속으로만 투덜거리고 또 금새 잊어버리곤 한다. 너무 우유부단한 것을 넘어 가끔 바보란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것은 그런소리를 들어도 타인이 행복하다면 내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뿌듯하거나 기분이 좋다.. 이런 행동이 나쁜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모두다 스스로의 탓이라 여긴다.

그러나 문제는 젊었을 떄는 이러한 사실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막연히<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어짜피 아우성쳐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걸> 하고 넘어가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살아 온 삶에서 결실을 원할 때쯤, 그때서야 쭉정이만 남은 텅 빈 자신의 밭을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게 된다.
자신이 원한다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표나 욕심을 가져야 그 삶이 충실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기에,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젊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올 때가 많다.
특히 지인들의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다든가 친한 지인의 죽음이나 아픔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본인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개입된 삶은 살고는 있으되 그것은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닐 게다.
이런 사실을 볼 때마다 살아있는 동안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마주서면 또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삶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도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냥 뛰쳐나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인데도, 스스로 그런한 행동이 무슨 죄를 저지르는 것 마냥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금전적인 지출이 있기라도 하면, 그로인해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 수 있음을 미리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남자가 뭐 그런 걸 가지고 쪼잔 스럽게>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 반응조차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남이 다 한다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분명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능력 역시 다름에도, 나 역시 남이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처럼...다른 사람의 삶이 왠지 부럽고 멋져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다른이가 나의 삶을 부러워 할수 있는 것 처럼...
나의 경험상, 문제는 남에게 떠밀려가거나 쫒아가는 삶은, 결국 나이가 들어 자신을 돌아볼 때쯤이면 대부분 후회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 하실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남이 다 하니깐> 하는 부러움보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마흔즈음에...

가끔 난 착각속에 빠져산다는 것을 꼭 현실과 부딧쳐 보고나서야 깨달는다.. 모든것이 조금씩이라도 변해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부쩍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40대로 접어드는데 그동안 난 여짓것 "내 인생에 이룬것이 무엇인가?" " 어떡해 여기까지 왔나" "이젠 어떻게 달라져야 하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 하는 막연한 질문에 시원한 답을 말 할수도 없다.

나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인생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냥 이민오기 초 고등학교 다닐때 모습과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것 같다. 사실 나는 내자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젊은 날의 나는 마흔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상해질 줄 알았다. 마흔이 되면 안정적인 생활과 저절로 인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배풀거나 조금 여유로운 생활을 할것이라 꿈을 꾸고 무엇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마흔을 몇달 안 남긴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싱거운 농담을 즐기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무시당하면 발끈하는 옛 성품 그대로다.

그런데 또다시 "오십즈음이면 나는 이럴것이다" 하는 다짐을 한다. 정말 누구 말만따라 다짐만 하고 인생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않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고상해지고 배려가 많은 사람이 될것이며, 꼭 하고 싶은것을 하면서 살아야한다는 이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지금 나는 실망과 방황을 동시에 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나의 마음의 한계를 자각해야하는데 점점 나이가 먹어갈수록 꿈도 작아지는 것 같다.
창피하지만 나의 인생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아..남의 인생을 보지 못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이제 39살 삼십대 마쳐가는 나도 꿈이  있었고, 해보고 싶다, 잘해보고 싶다 그런 것도 없지않아 많았지만 , 인생이 무의미하고 열등감 혹은 라이벌 의식과 같은 청춘의 자극도 없으니 항상 허무했다.  꿈이 없으니 의욕도 없고,  그러니 열심히 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친구들과 대화, 자연스럽게 생기는 추억들 정도가 남더라. 지금은 친구들이 각자의 사업과 진로방향을 잡아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데 나는 그저 남들 하는 것 흉내만 내는 것 같다. 물론 그 모든것이 "꿈이 없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정말 힘드는 건 사실이다. 뭐든 해보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그저 가게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가장 편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계획해야한다는 생각에 한 순간도 얼렁뚱땅 보내는 일이 없다. 남들이 다 하는 일, 여행, 운동 등등 다 해볼 생각이다. 뭘 해봐야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러다보면 방향이 잡히고, 그 끝에 희미하게 꿈이 있을 것 같았다. 난 아직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뭔지, 무엇을 해야 옳은일인지, 구체적으로 잡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나는 '못낫이, 루져' 로 생각하지말고 나가서 움직이고 체험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냥.. 여전히 꿈이 없지만 있길 바라는 부끄러운 사회인으로서 글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