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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나의 이야기--- 대등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10월달은 참 많은 경조사를 다녀왔다. 정말 일주일 간격으로 결혼식과 장례식을 다녀왔는데 매번 이런 경조사를 보며 느끼지만 참으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론 사람 사이에는 대등한 인간관계란 없다는걸 알아간다.
그동안 서로 친하게 관계를 유지해 왔으므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일 스스로 대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부지 생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가 주는 것은 크고 남이 주는 것은 작다란 인식이 밑바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인식은 항상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적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친구나 가족이 어려운 일에 닥치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웃긴 얘기지만 돈 문제만큼은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 초월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한두 번은 그간의 정 때문에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고 도움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 선뜻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친구란 존재와 사람의 정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알 수 있게 된다.

이런한 비근한 예는 상가 집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죽어 문상 온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의 생전의 삶에 대해 평가를 하곤 하지만, 그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닐 게다.
잘사는 집에서 상(喪) 이 나면 조화가 문밖까지 넘쳐나고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반대로 가난한 집의 상(喪) 은 한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것이 세상인심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여기에 내가 그동안 인간관계를 어떻게 쌓아 왔는냐는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쨌던 우리는 친구나 형제자매나 동료는 늘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어느 정도 서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유지하지만 돈 문제만 생기면 얼굴을 붉히게 된다.천편일률적 (千篇一律的) 으로 균등하게 나누어 부과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정말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존심으로 상처를 입고, 돈을 내기 싫은 사람은, 이를 핑계로 삼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실리를 탐하게 된다.

이처럼 주변 환경이 엇비슷하여 대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것 같지만,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듯이, 생활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지난(至難)한 일이다.
서로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등을 기대며 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있어서 똑같은 존재로 대등한 삶을 대접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서로 조금씩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고 양보하고 살아야, 최소한 스스로 만큼은 따뜻한 정을 느끼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아르헨티나 이야기---게시판을 보면서 나도 한마디..

대부분의 지나간 것에는 아쉬움이 더해져 슬프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 딱 거기까지라면 좋겠다. 애증 이상의 어떤 마음도 생기지 않는 그 끝을 넘지를 말아야 하는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이제는 온전치 못한 형태로만 남은 기억에 대한 예의이다. 

안정에 대한 열망 혹은 누군가 안아주지도, 자신도 자신을 품지 못함에서 오는 외로움을 무기로 어느날 태연하게 불쑥 찾아와 불을 지르듯 절망을 안겨주고 사라지는건 어른이 아니다. 

남은 사람은 그 불이 꺼지고 그을음이 남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견디어 내다가 미움조차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그것은 당신이 두려워하는 외로움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다. 그러니 행여나 다음번에는 무거운 짐은 내려놓는 대신 고운 꽃이라도 주고 가시라..





나의 이야기---뭐 그런 기분..


뭐 그런기분..

아주 훌륭한 음식이 앞에 놓였는데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때, 
못 먹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이라 
먹어도 안먹어도 그만이면서도 왠지 먹어야 손해보지 않는 ,
아니 먹어야 내 소임을 다하는 것 같은 어정정한 기분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등떠밀리듯 먹고나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사실 결과적으로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것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되버린거지" 후회하면서 화나는
"그때 분위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다" 라고 발뺌하는 나를 본다.

이미 음식은 나의 식도로 통하는 목구멍을 질러 아래로 내려간지 오래라 
무를 수도 없어서 남 탓도 못하고 내 탓을 하면서도 억울한 그런 감정들... 
명확한 것 없이 항상 그런식으로 선택을 하며 그렇게 어중간하게 살아온건 아닌가 싶어서
갑자기 혼자 주절주절, 궁시렁궁시렁 투덜된다.
요즘의 기분, 매사가 다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일, 사랑은 제외렷다..


지은이 : 아르헨20년

나와 같이 공감하시는 분이 계실까???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아르헨티나 이야기---포플리즘의 문제점

몇일간 어머니날(10월 셋째주 일요일) 관계로 포스팅을 못했네요..ㅎㅎ
뭐 대목 사라진지는 이미 예견 하고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더욱 하락세를 걷고 있는듯 합니다. 우리 한인들의 사업인 옷가게 뿐만 아니라, 여러상점 및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로 이번 어머니날은 기대이하 였다고 합니다. 과다한 경쟁과, 선물품목의 다양성과, 특히 현 아르헨티나의 경기상황이 눈에 띄게 안좋다는것을 보여준 한주간이였습니다.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나름 저축도 하고 장사하는 맛이 났는데 지금의 아르헨티나는 왜 이모양으로 됬을까요? 그것에 대한 의문과 답은 바로 포플리즘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 이 포플리즘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잠깐 알려드리고 계속이어 나가겠습니다.

◈ 나라 거덜내는 포플리즘(Populism) 

포플리즘이란 대중주의 라고도 불립니다. 또는 인기영합주의, 대중영합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포플리즘 정책은 서민들을 위한 보건과 복지 수많은 사회혁신, 저소득층과 중산층 모두 잘사는 나라를  기대하지만 이곳 아르헨티나에서는 단순히 정치인들의 장난과 혜택 받지 못하는 허상에 불과 합니다. 일반 대중을 정치 전면에 내세우고 동원시켜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말하는데 엘리트 주의와 대립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각 사전과 사람들의 해석하기에 따라 약간 다른 의견이 있을수 있으나, 캠브리지 사전에선 "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정치사상과 활동" 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포플리즘의  한국번역을 하자면 민중주의 또는 인기 영합주의라고 해서는 포플리즘의 실체와 내용을 잘 이해하가 어렵습니다.

수많은 중진국 나라에서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나라(아르헨티나, 브라질, 체코, 포르투갈등)들이 중진국에서 주저앉고, 선진국으로 진입을 모두 실패 했습니다. 
한때 선진국의 로망이였던 아르헨티나..
20세기초 세계를 이끌 절호의 기회를 잡고서도 근 반세기 몰락을 거듭한 아르헨티나는 포플리즘에 의한 대표적인 국가 경영의 실패에 관한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쇠락했을까요? 그것은 과도한 복지와 포플리즘, 실패한 산업정책이 우선 꼽힙니다. 이 포플리즘 정책은 아르헨티나에선 페론이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갖추지 못했고, 경제 정책적 실천수단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었습니다. 그 막대한 현금을 믿고 페론은 정치적 실책과 포플리즘 영합주의로 인해 국고를 탕진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몰락과 살인적인 인플레션을 몰고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치욕스럽게도 아르헨티나는 이때부터 포플리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오늘날까지도 아르헨티나 페론 정부를 거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아르헨티나의 포플리즘은 , 국민 편가르기와 이를 통한 항상적인 민중의 정치 동원, 광장 정치가 페론주의의 최대 특징 중 하나입니다. 민중과 기득권층, 착취자와 피 착취자, 부자와 빈자, 반개혁의 기득권자와 젊은 개혁파로 편을 가르고, 노병의 기득권자는 지금까지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는 개혁파들이 차지할 것이라며 페론주의 청년동맹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들을 끊임없이 정치집회에 동원했고 지금까지도 동원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월 광장이나, 오벨리스꼬 광장에는 거대한 에바초상화와 깃발이 등장하고 연극과도 같은 한밤중의 횃불 집회 속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정치쇼를 보여주는 것이죠. 위협적인면서 대중적으로 보이기 위한 현정부의 간교한 술수라고 보여집니다. 그 가운데에서 그들은 자기들과 동참을 반대하는 세력은  민중의 적이라 간주하고 그들만의 힘과 단합을 끊임없이 과장하여 민중들에게 굴욕감과 증오심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정치적으로 유입시키려 하며, 반미 자주의 구호 아래에 외국인 소유 기업들을 국유화 했습니다. 

 현 아르헨티나 정부는 과거 페론시절의 포플리즘 정책을 판박이 했을 정도로 똑같은 상황입니다.  언론 통제, 사법부 통제 다양한 각종세금폭탄, 저소득층의 가족수당, 생계수당, 주택건설 계획, 노동자들 엄청난 혜택등 말로 표현 할수없을 정도의 퍼주기 정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한 자본과 인텔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노조 매수를 위해 국부가 탕진되면서 나라 전체가 거덜나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르헨티나정부는 자존심이 아니라 거만함을 볼수 있습니다. 아직도 페론이즘의 망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반미 민족자주, 반자본주의 정책, 쇄국주의정책등을 보면서 이곳에 사는 저는 한숨만 나옵니다. 외국인인 저도 이렇게 느끼는데 내국인들은 오죽할까 하네요. 현정부는 좌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마피아처럼 보여집니다. 

말하자면 현정부는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가진 자에 대한 갖지 못한 자의 분노와 증오를 권력의 기본 동력으로 삼으면서 사실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모두 속이는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살림 거덜낸 포플리즘 정책을 되풀이 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정말 블렉 코메디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자면 

첫째 : 공업화 정책대신 농업위주의 경제 정책을 편 것이 국익 발전에 도움이 안된것..
둘째 : 정치적인 불안, 끊임없는 내란과 혁명이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국력 낭비..
셋째 : 실패한 분배와 평등 중시한 페론주의 정책(퍼주기 정책) 을 계속 반복한 점.

제가 진단해보는 해결방법입니다. 

첫번째 : 반개혁의 정치

 정치가 특권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 지주, 군부, 독점기업, 거대 노조등 소수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면 안 된다. 국가 비젼과 전력을 가지고 시대변화를 읽고 개혁을 주도하는 정치가 꼭 필요하다. 국가 전략이나 비전이 없는 개혁은 의미 없다.

두번째 : 반 세계화 경제

 제조업과 수출산업을 경시하고, 대외시장을 막고, 외국자본을 제국주의라 규탄하고 심지어 주요산업을 국유화 하는 등 '자유화 세계화' 의 흐름에 역행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면 안 된다. 개방과 경쟁이 없는 경제 세계화는 무의미 하고 발전이 없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세번째 : 복지 포플리즘

 반 개혁과 반세계화로 나라경제가 망가져 급증한 도산과 실업과 급속한 경기냉각 등 '퍼 주기 식' 복지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잘못된 썪은 정치와 경제를 고치려 하지 않고 무조건 땜빵식의 무상교육, 무상의료등을 약속하여 노동자와 빈민들의 표을 구하면 안 된다. 그들이 필요한건 돈보다 국민 의식이 먼저인것이다. 실패한 포플리즘정책은 과감하게 접어야 한다. 또한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한 실천하기 어려운 복지정책 공약은 하지말아야 한다.   
지금의 아르헨티나의 비극은 썩어빠진 정치인들과 안일하게 대처하는 국민의식과, 나만 잘살면 된다는 극단 이기주의의 합작품이라고 봅니다. 
한나라가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아르헨티나 페론주의와 포플리즘에 관한 상징적인 교훈은 바로 과거의 부귀를 생산적인 것이 아닌 소비적으로 소진시켜 버렸거나...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무리한 복지 정책의 확장 정책은 국부를 곤궁하게 만든다" 란 것입니다.
결국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원동력은 시민의식과 사회적 컨세서스에 달려 있다' 라 보는 것입니다. 

이해가 좀 되셨나요? 
그래도 절망속에서도 희망이 보이는 나라... 바로 아르헨티나가 아닐가 조심히 말해봅니다.

끝.

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그러려니....

누가 그랬다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다" 고..  어느 상황에 맞춰 끼는냐에 따라 맞는 말이기도 하나 또 어떨때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절이기도 한것 같다.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 알고 있으면 그 사실이 품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알고 있는 것과 그 일을 직접 겪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 정답이고 바른말이고, 타인의 의견이나 지식은 무시하는 행동을 볼때면 참으로 갑갑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는 것이 많은 사람도, 직접적인 경험이 모자라면 왠지 모르게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말이 곁 돌고, 진실성이 결여된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이라 했던가?

살다보니 모두들 자기의 아픔만 아프다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아픔처럼 직접적인 아픔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을 보면서 그 아픔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아픔을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픔이 곪아 터져 상처가 덧나 내게 옮겨오지 않는 한 외면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아픔일지라도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어쩌면 아마 사람은 영원히 같은 경험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해는 가급적이면 그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코 나의 생각이나 나의 마음으로 다가가서는 그 사람의 곁에 설 수 없다.
어쩌면 남을 비난하거나 험담할 수 있는 것도, 그것에 대한 내 마음의 불편함이 믿음보다 더 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람이 사심 하나 없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슬픔을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이 더 현명할 때도 많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러려니' 는 방관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러려니' 만큼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말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단순하게 도덕적인 것들이 삶의 기준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만큼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예견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섭으로 여겨질 행동은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말로는, 마음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그 무엇을 못 하겠는가? 하지만 삶은 단절이 아닌 연연히 이어지는 것이기에 내게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내놓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요즘만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켜야 할 때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뭐가 그리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은지, 사람마다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데 어찌 먼저 선뜻 나서서 하고 싶다고 그 말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찾아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도리어 더 민망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 친한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무시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섬을 절제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싫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불쑥불쑥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 사실 이러한 자각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자각은 먼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얼굴이나 모습만큼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대화나 설득은, 상황에 대해 이해를 시키는 것이지 옳음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 그리 손해가 가는 일이 아님에도 사람이싫으면 공연히 트집을 잡아 공격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나 행동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는 현명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나의 이야기---가난한 자의 변명

전화가 왔다..
몇일동안 연락이 없던 아는 동생한테 저녁에 잠깐 들리라는 전화다. 흔쾌히 "알았다"는 말은 했지만 내심 "왜 갑자기 나를 부르지?" 중요한 자리마다 참석을 안했던 녀석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내왔는데 뜸금없이 얘기 좀 하잔다.
사실 그동생도 장남이고, 이제 무한경쟁사회를 알아가는 상황이라 예전에 내가 한참 방황하는 모습을 보는것 같다 내경험을 밑 삼아 얘기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내가 이런식으로 살아보니 이건 아니고, 이렇게 해보니 괜찮더라 등...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펼쳐 놓는다.. 그 다음에 행동하던지 아니면 계속 자기 고집을 부리면서 살던지는 그 동생의 몫일게다.
솔직히 나도 잘난것 하나없지만 내가 이제 것 겪어온 얘기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그런데 사실 나도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지워진 삶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가난한자는 늘 우울하다. 아이들이 자라 쓸 곳이 많아지고, 젊었을때는 가지 않아도 좋을 상가나 결혼식에도 꼬박꼬박 찾아 경조금을 내야하고,특히 이민사회에서는  클럽모임이나, 아는 지인들과의 모임 등 각종 사회활동에도 명함을 내밀어야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돈들어오기 무섭게 지갑에서 돈이 술술 새어나간다.
모아둔 돈의 잔액이 줄어들고 지갑이 얇아질수록 내마음도 같이 가난해 진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지만 과연 얼마만큼 벌어야 만족할 만큼 쓸 수 있을까?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먹고 쓸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자위하지만 그것은 가난한 자, 희망이 없는 자의 변명일 뿐이다.
솔직히 나에게 돈이 풍족하면 부모님에게 용돈도 많이 드리고, 못사는 형제자매도 도와주고, 자선단체나 봉사단체에도 기부 한 번 폼나게 할 수 있을텐데...하지만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돈 있는자가 더 지독하게 인색하고, 더 많이 아는자가 그보다 못한 사람을 수탈하는 것이 인간들의 속성이 아닌가. 힘들게 돈을 번사람들일 수록 " 두고보자 내가 돈 벌면 복수해주마"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것 같다..
지금 나에게 여유돈으로 10만불만 있으면 조금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텐데... 따지고 보면 얼마되지도 않은 돈인데, 꼬딱지만한 가게를 운영하는 나로서는 벌어서 생활비나 각종 세금들을 제하고, 근검절약하고 아낀다 해도 기반이 될 정도의 종자돈을 저축하기가 정말 쉽지않다..말이야 한방 터지면 된다고 하지만 그놈의 한방도 있는 사람들한테 터진다는 진리를 요즘 깨달고 있다. ㅡ.,ㅡ;;

고국이라면 주식투자나 펀드를 하고 싶지만 10여년을 악착스럽게 살아온 나의 삶을 혹여 실패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 있는 곳에 투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났다>  란 말처럼 요즘에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이 돈을 벌고 돈이 생길만한 정보를 선점하지 못함에 기인하기도 하나, 빈손으로 시작하여 결혼하고 내집 마련하고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비, 특히 각종 세금폭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된다, 지금 가진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출신에 따라 선착순이 정해지는 현실에서는 다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쓸 돈 다쓰고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겠는가? 라고 말을 할 수는 있다.
반대로 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그렇게 악착같이 먹을것 안먹고, 입을것 안입고 열심히 일만하면서 살아와서 이제 살만하니 병들고, 젊음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리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인생이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일 것 이다. 그렇게 살면서 지나친 삶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보상 받을려고 하는 내생각이 잘못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워도 돈이나 시간을 쪼개고 쪼개 써도 잘하니 못하니 하는것이 현실인데,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인간의 도리나 문화생활정도는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하다는 것은 남 보다 많은 것을 잃고 사는 것과 같다.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한가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닐가 싶다. 돈으로 인해 친한 친구에게 가족에게 따돌림 받는 것처럼 사람을 안타깝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
친구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그 뒤만 쫒아야 하는 이류인생을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내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을 나누며 인생이 어떻니, 문학이 어떻니 하는 것은 다 젊었을 때 한번쯤 겪는 과정이고 넋두리이지만 나이가 차차 들면 그것만치 공허한 것도 없다.
<돈이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란 말의 의미를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으리라.
젊었을 때 생각이 깨어있지 않으면 늙었을 때는 누울자리 하나 없을 나는 요즘 주변에서 보고 느끼고 있다.

지금 나는 과연 나를 알고 있는 다른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의미를 간직한 사람일까?
어려운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되며, 부탁 한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는 있는 걸까?
이모든것이 정말 가난한 사람의 변명이라고만 말 할수 있는가?



2012년 9월 29일 토요일

나의 이야기---상처와 우정

전에도 잠깐 언급 했지만 나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냐를 보고 나를 판단한다.
만나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거나, 술만 마셔대는 주정뱅이냐 아니면 다른 상식밖의 행동을 할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나도 그런부류의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보는 시선이 틀린것만은 아니다. 나 또한 인간관계를 맺을때는 그사람의 주변인물을 둘러 보니 당연한 이치다.

오래전부터 알고 왔던 아주 친한형들이 있는데, 절제를 하지못해 속상한 일들이 한두번이 아니다. 밤 늦게까지 마신다거나, 어떤 대화를 하려고 할때 "너나 잘해라" " 그냥 아무말 없이 마시자" 등 이런식으로 사람을 무시하다던지, 절제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보면 회의를 느낀다. 사실 그형들이 너무나 좋지만, 과연 이자리를 계속 유지해야하는지, 냉정하게 관계를 끈어야 하는지 나는 지금 고민중이다. 사실 아무 의미없는 자리는 결코 나의 인생에도 유익하지 못할뿐더러 나아가 도태되는 일까지 생길 수가 있다. 내가 변하던지 그사람들이 변해야 하던지 둘중 결단을 내려야 할때가 온것이다. 사정을 잘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고 좋은게 좋다고 너무한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속사정을 잘모르고 하는 말 일것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아마 남에게 믿음에 대한 배신을 당했을때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의 또다른 이중성을 보았을때인 것 같다.
그동안 서로를 믿고 수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했는데, 한 순간 자신의 이익에 의해, 그 동안의 믿음에 등 돌리는 모습은 바로 충격 자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무슨 변명이 필요할까? 하루 이틀 알 던 사이가 아니라면, 그동안 함께했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정도 쌓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 정에 대한 믿음을 재단하려면 반드시 그 크기만큼의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설령 증거가 있다하더라도, 최소한 왜 그래야만 하는지 당위성을 명확히 한 다음에 처신하는 것이 옳다.
밑도 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믿음을 재단하려 한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가 섭섭한 감정 없이 수긍할 수 있겠는가?

요즘 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다. 힘이 생기는 순간 그동안 자신을 위해 힘과 노력과 청춘을 보태준 사람의 노고를 헌신짝처럼 버려 버린다. 그것이 살기 위한 방편이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그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조금 더 보태기 위해 그 더러운 일을 한다. 그저 그런 사람이면 그려련히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믿음이 출발점이 되어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사실로 인해 발목이 잡힌다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그런 관계를 유지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상대도 노력을 해야한다고 본다. 서로가 함께 정을 나눴으면 믿음을 깨는 것도 최소한 함께 해야 하지 않는가?

요즘은 친구가 그립다. 너무나 변해만 가는 세상속에서 같이 나눌수 있는 그런 친구들, 말을 안해도 눈빛만으로도 내 마음을 알아채는 그런 친구들이 그립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질 뿐이다.
조언과 충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선택은 오로지 본인의 몫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변하지 않고 어릴적 그마음 그대로 갖고 있길 바라는 내가 이상한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좋은 친구, 함께 있는 것만으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한 스스럼없이 마음이 공유함을 느끼게 되고, 이런저런 잡다한 말들을 쏟아내게 하는 친구들이 나는 지금 너무나 고프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서 만난 사람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한 친구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난 지금 세상에 의해 믿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는 바로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감기 같은 것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슴에 담아둘 수 밖에 없다.
하루빨리 시간에 가리워지고 엻어져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의 이야기---어린아이 같은 나



남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요즘 내가 바라보는 나는 항상 어린 아이와 같다.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는 항상 옳은 듯 행동하지만 실상 마음으로는 항상 투덜거린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마음이 있었는데 갈수록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기 일쑤이고, 때때로 마음속에 분노를 참지 못해 폭팔해 버릴때도 있다. 마치 나는 지극히 정상인데 세상이 나에게 태클을 거는것 같고, 내가 생각한 상식 밖의 일들을 볼때면 죄다 무식한 사람으로 바라볼려는 삐뚜러진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려고 공연히 화난 척 토라지거나 삐친 모습을 보인다.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면 함께 즐거울 수 있는데 쓸데없는 자존심과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도 같다.

말은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슨 큰비밀도 아닌 그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면 그만인 것을 마치 상대방은 나의 말에 동의해 주고 내 말을 무조건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어찌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내생각은 담아두면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없지 않는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닫쳐진 마음의 문을 열기를 두려워하는 마냥 자기말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것 같은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 감정의 변화가 적어야 하는 법인데 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지나쳐도 좋은, 별 것도 아닌 작은 나쁜 말들을 참지 못하고 마음 안에 꾹꾹 늘러 담고는 한다. 어쩌면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말인데도, 자신을 건드리는 것처럼 화를 내고 혼자 후회라는 내 자신에세 실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 외톨이가 되어 홀로 외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처럼 나의 마음은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다.

이제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주변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를 바란다. 마음을 알아달라고, 나의 사랑을 알아달라고, 나의 힘든 처지를 헤아려달라고 무언의 투정을 하곤 한다. 그렇게 나는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부터 먼저 배려 받기를 원하곤 한다. 갈수록 마음 씀씀이가 왜 이리 좁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사탕 하나 더 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내나 부모님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사이도 아닌데 괜히 줄다리기 하려고 한다. 마음에 들어야 눈에 거슬리는 것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기분 좋은 날이면 그냥 넘어갈수 있는 일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면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은연 중에 오만짜증을 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요즘은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곤 한다.
그런데 희안한것은 이런 나의 단점들을 내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화가 나면 도통 감정 조절을 못해 큰 낭패를 보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그리 고민하지 말고 쉽게쉽게 마음을 터놓으면 될 터인데,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의 마음만 헤아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나의 이야기---가슴이 답답하다.

얼마전 어머니랑 다툼이 있었다.. 서로간에  이해부족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커다란 오해와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게 아닌데 어머니는 자꾸 그렇다고 말씀하시니 정말 내 속마음을 열어보이고 싶다.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을 해야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서러움이 남는건 나도 어쩔 수가없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실까? " 하는 생각에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다.

인생을 살면서 이럴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하기싫은 일을 꼭 해야할 때와 가기 싫어도 꼭 가야할 때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인생의 진리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하기 싫은 일은 피하고 싶은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프거나 초청했을 때 왠지 부담이 가는 경우가 종종있다. 형제자매라 해서 소위 말하는 똥집이 다 맞는 것이 아니고 저마다 각자의 개성과 성격이 틀리기 때문이고, 친구라 해서 무늬만 친구지 다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지 자신의 잇속만 챙기고, 돈 드는 일이나 힘들일에는 나 몰라한다. 꽁짜로 먹는 일이나 평소 집안일에 코빼기도 안비추던 사람이 자신의 경조사에는 염치불구 하고 사둔에 팔촌까지 초청장을 보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을 봐서는 안가겠지만 다른 형제나 친구의 얼굴을 보고 기분은 내키지 않지만, 체면치레 할 때는 정말 "사람이 사람구실하고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든다.
살면서 마음에 가장 큰 상처는 대부분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 받는다. 그것은 믿음과 정이 큰 만큼, 배신을 당했을 때의 마음의 상처 역시 믿음과 정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크다.

내가 가만히 보니 형제자매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든 서로 양보하고 내 것 네 것 없이 지내지만, 결혼과 더불어 세대가 구성되고 아이를 낳게되어 자신의 몫으로 써야 할 부분이 생기는 순간 부터는, 우애의 틈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예전에처럼 끈끈한 관계가 약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이 당연하 일인데도 형제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없지않아 강요하거나 강요 당하는 것도 있겠지만, 명절이나 가족행사와 같이 돈과 몸이 함께 해야할 일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한 두번 외면하게 되면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중년이 되면 가장 큰 일이 아이들의 교육이나 성가시키는 문제와 연로한 부모의 부양문제가 가장 큰 부분이다. 그 중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어느 한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형제자매 모두가 십시일반하고, 부모의 대소사를 몸으로 떼워야 되는데 언제나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사람에게서 무슨 정을 기대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대부분 부모에게는 알랑거려 점수를 따고, 몸으로 하는 일이나 돈이 드는 일은 뒤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만 앞세우고 온통 자신이 다한 것처럼 포장하여 공을 내세운다. 네가 하는 일은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이고 자식의 도리라면서, 자신이 해야 할 사정이 있을 때는 핑계를 대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유도하는 얌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가족도 이러할진대  친구들은 오죽 하랴...

부모를 모시고 친구들을 위하는 일에 무슨 순서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형제나, 부모나, 친구가 최소한 마음만은 알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살면서 내가 할 일에 최상은 못되더라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안보여지니 조금은 서러운 마음이다.
부모를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마음은 매일이라도 찾아가서 모든것을 덮고 즐거운 마음으로 웃고 떠들고 어울려 함께하는 것이 도리라 하는데, 몸은 천근만근 누가 잡기라도 한 것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원인은 항상 속 좁은 나에게 있지만, 나 역시 부모에게 사랑받고 형제에게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사람임에는 틀림없기에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혹여 형제자매나 친한 사람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용기를 내서 찾아가봄은 어떨까 싶다.
마음의 벽은 쌓을수록 더욱더 외로워지는것은 자신이기에....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나의 이야기---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뱁새가 황새 쫒아가려면 가랑이 찧어진다> 이런 속담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뱁새는 몸길이가 13Cm정도 되는 작은 새다. 반면에 황새는 날개의 길이만 66Cm 정도로 뱁새의 5배가 넘는 큰 새. 이 속담은 다리가 짦은 뱁새가 큰 황새처럼 걸으려고 하니 다리가 찢어지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이 한다고 하여 제 힘에 겨운 일을 억지로 해 나가다가는 도리어 큰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남이 사니까 따라 사는 소비, 남이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가져야겠다는 욕심, 계획에 없던 물건들을 덜컥덜컥 사게 되는 충동구매,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고 싶은 과시욕.... 이들 모두는 자신의 소득이나 형편은 고려하지 않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소비행위의 예들이다. 다리가 짦은  뱁새가  다리가 긴 황새 흉내를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졌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뱁새들이 있다.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개인신용 불량자는 600만명에 이르고, 그로인한 다양한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게 한다.

자기의 소득이나 형편에 맞게 물건을 사고, 돈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수에  맞는 소비! 이는 개인, 가정, 사회를 건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도 풍요롭게 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요즘 무분별하게 <남들이 하니깐> 나도 안하면 뒤쳐질거라는 불안함, 혹은 꿀리려하지 않는 과시욕 때문에 힘들게 사는 친구들을 보곤 한다.그것이 꼭 물질적으로만 제한되어 있지는 않다.
며칠전 이민친구들과의 모임에 다녀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참 정말 내 인생을 위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 말이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강제로 떠민 것도 아닌데, 그저 남이 하니까, 친구들에게 꿀리기는 싫으니까, 못이기는 척 따라 했었지 않나 싶다.중학교를 마치고, 이민와선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대학교에 갈 때도 그랬다. 나의 적성이나 꿈보다는 남들의 의견들에 따르곤 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생각했던 이상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는데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무엇인가 목표의식을 갖고 끝까지 죽기 살기로 전력을 다해도 될뚱말뚱인데 나에겐 그런 악바리 근성이 모자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건 불혹(不惑)을 얼마남지 않은 지금도 그렇다.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만 한다.. 혹여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 있더라도 큰 손해가 아니면 속으로만 투덜거리고 또 금새 잊어버리곤 한다. 너무 우유부단한 것을 넘어 가끔 바보란 소리를 듣곤 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것은 그런소리를 들어도 타인이 행복하다면 내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뿌듯하거나 기분이 좋다.. 이런 행동이 나쁜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모두다 스스로의 탓이라 여긴다.

그러나 문제는 젊었을 떄는 이러한 사실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막연히<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어짜피 아우성쳐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걸> 하고 넘어가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살아 온 삶에서 결실을 원할 때쯤, 그때서야 쭉정이만 남은 텅 빈 자신의 밭을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게 된다.
자신이 원한다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표나 욕심을 가져야 그 삶이 충실할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기에,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젊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올 때가 많다.
특히 지인들의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다든가 친한 지인의 죽음이나 아픔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본인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가 개입된 삶은 살고는 있으되 그것은 이미 자신의 삶이 아닐 게다.
이런 사실을 볼 때마다 살아있는 동안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마주서면 또 누군가에게 이끌려가는 삶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도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냥 뛰쳐나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인데도, 스스로 그런한 행동이 무슨 죄를 저지르는 것 마냥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금전적인 지출이 있기라도 하면, 그로인해 소중한 사람들이 힘들 수 있음을 미리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남자가 뭐 그런 걸 가지고 쪼잔 스럽게>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 반응조차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남이 다 한다고 나 역시 그럴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분명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능력 역시 다름에도, 나 역시 남이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처럼...다른 사람의 삶이 왠지 부럽고 멋져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다른이가 나의 삶을 부러워 할수 있는 것 처럼...
나의 경험상, 문제는 남에게 떠밀려가거나 쫒아가는 삶은, 결국 나이가 들어 자신을 돌아볼 때쯤이면 대부분 후회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 하실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남이 다 하니깐> 하는 부러움보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마흔즈음에...

가끔 난 착각속에 빠져산다는 것을 꼭 현실과 부딧쳐 보고나서야 깨달는다.. 모든것이 조금씩이라도 변해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부쩍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40대로 접어드는데 그동안 난 여짓것 "내 인생에 이룬것이 무엇인가?" " 어떡해 여기까지 왔나" "이젠 어떻게 달라져야 하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 하는 막연한 질문에 시원한 답을 말 할수도 없다.

나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인생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냥 이민오기 초 고등학교 다닐때 모습과 정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것 같다. 사실 나는 내자신이 이럴 줄은 몰랐다. 젊은 날의 나는 마흔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상해질 줄 알았다. 마흔이 되면 안정적인 생활과 저절로 인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배풀거나 조금 여유로운 생활을 할것이라 꿈을 꾸고 무엇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마흔을 몇달 안 남긴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싱거운 농담을 즐기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무시당하면 발끈하는 옛 성품 그대로다.

그런데 또다시 "오십즈음이면 나는 이럴것이다" 하는 다짐을 한다. 정말 누구 말만따라 다짐만 하고 인생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않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고상해지고 배려가 많은 사람이 될것이며, 꼭 하고 싶은것을 하면서 살아야한다는 이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지금 나는 실망과 방황을 동시에 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나의 마음의 한계를 자각해야하는데 점점 나이가 먹어갈수록 꿈도 작아지는 것 같다.
창피하지만 나의 인생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아..남의 인생을 보지 못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이제 39살 삼십대 마쳐가는 나도 꿈이  있었고, 해보고 싶다, 잘해보고 싶다 그런 것도 없지않아 많았지만 , 인생이 무의미하고 열등감 혹은 라이벌 의식과 같은 청춘의 자극도 없으니 항상 허무했다.  꿈이 없으니 의욕도 없고,  그러니 열심히 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친구들과 대화, 자연스럽게 생기는 추억들 정도가 남더라. 지금은 친구들이 각자의 사업과 진로방향을 잡아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데 나는 그저 남들 하는 것 흉내만 내는 것 같다. 물론 그 모든것이 "꿈이 없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정말 힘드는 건 사실이다. 뭐든 해보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그저 가게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가장 편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계획해야한다는 생각에 한 순간도 얼렁뚱땅 보내는 일이 없다. 남들이 다 하는 일, 여행, 운동 등등 다 해볼 생각이다. 뭘 해봐야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러다보면 방향이 잡히고, 그 끝에 희미하게 꿈이 있을 것 같았다. 난 아직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뭔지, 무엇을 해야 옳은일인지, 구체적으로 잡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나는 '못낫이, 루져' 로 생각하지말고 나가서 움직이고 체험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냥.. 여전히 꿈이 없지만 있길 바라는 부끄러운 사회인으로서 글을 남기고 싶다.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친구에겐 자존심이 필요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입장을 정리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는 내 감정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화를 내곤 한다..
자신은 안부 전화 한통 없다가 어쩌다 마주치면 " 어떻게 전화 한번 안하냐? 그래 그동안 잘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냐?" 하고 마구 따지거나 " 야~ 오랫만이데 언제 연락한번 하자, 밥한번 같이 먹자" 하곤 영 깜깜 무소식이다. 

물론 이성이라면 먼저 전화하기가 조금은 거리낌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고, 가정이 있어서인지 서로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자존심의 발로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그래도 30대초중반만 해도 전화통이 불나도록 서로 간에 안부전화는 물론 생일도 잊지 않고 기억해서 함께 어울리며 소주 한잔이라도 나눴는데, 이젠 어떤 계기가 주어져도 애써 만나려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런상황들을 충분이 이해하지만 점점 거리감이 느껴지는건 어쩔수가 없다. 그만큼 여러 군데에 씀씀이가 커져 쪼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감이 더 큰 원인이 되지 않나 싶다. 

친구 중 누가 어려움에 처해도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염려하는 것이나 모든 것에서 어느 정도 안정감 있고 앉을자리에 제대로 앉아서 자신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왜 그리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하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다소 여유라도 생겼으면 좋으련만, 나 스스로도 친구와 가족을 사이에 두고 갈팡질팡 할때가 있다.. 이것이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본다. 부끄럽지만 내가 머물렀던 자리를 되돌아 보면서도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인것 같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남자는 홀로 남겨지는것 같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삶도 그러한 듯 하다.
여자는 늙어서라도 가사일을 돌볼 수 있지만 남자는 자식이나 아내앞에서 딱히 도울일도 없다. 남자라도 이젠 홀로 남겨질 자신을 위해 틈틈히 세탁기 돌리는 법과 간단한 요리하는 법을 배워둬야 하지 않을듯 싶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면 편하니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한조각 남은 남자의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짦은 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질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때때로 혼자 이렇게 거리를 거닐며 사람 사는 즐거움을 찾곤한다.
좁디 좁은 이민사회에서 그 속에 끼어 "나 역시 숨 쉬고 살고 있구나" 란 생각에 절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독불장군은 필요없다. 다만 더불어 정을 나누는 사람이 필요할 뿐.. 
그래도 친구들여!!! 
한가정의 남편이자 아빠인 너희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친구들 모두가 마음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젊은시절의 동심만큼이나 서로에게 믿음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 먼 훗날 또 다른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나부터 바뀔테다!!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나의 이야기---빈약한 나의 의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참 의지가 약한것 같다.
그래서인지 결심을 오랫동안 이어가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기 일쑤이다.
특히, 음주가무의 유혹에는 더더욱 쉽게 넘어간다.
돈을 써야하는 일이라 처음에는 주저하고 망설이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에 바쁘다." 그래, 돈이야 또 모으면 되지, 인생 살며는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는 거야, 젊었을때 즐겨야지" 이렇게 내 스스로 최면을 건다.

솔직히 인생을 살다보면 이렇게 살지말아야지, 이런모습은 안좋은것이니깐 변화를 주어야 겠다고 몇번의 단호한 계획과 의지를 보이지만 유혹이 앞에 다가오면 쉽게 뿌리치지 못하고 [내가 원해서 하는일]인양 자기최면을 걸어서 정당화 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알다시피 이런 일은 대부분 끝나고 나면, 깔끔한 기분이 들기보다는 후회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렸을때는 철이 없다고 변명이라도 할수 있으나, 지금은 변명을 하는 그런 나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사실 일주일에 2~3번의 술자리는 늘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고집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왜냐하면 너무 자신만의 원칙을 고집하거나 집착을 하면 융통성이 없거나, 자칫 계산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혀,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불러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술을 먹은 다음 취해지는 행동이 정말 마음에 안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너무 과음을 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이 없고, 취하기 전에는  절제할 수 있던 것들도 술에 취하면 도통 절제가 안된다는 것과  늦은시간까지 무리해 가면서 마셔되는 것 등이다.
그렇게 밤늦도록 이어지는 자리를 파하고, 비틀비틀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오늘 뭘 한것인가, 내일 당장 할일이 산더미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며 공공히 기분 나쁘고 무엇인가 찝찝한 기분이 들때도 있다. 세상은 숙취에 해롱거리며 살만큼 만만한 것이 아님에도, 종종 나도 모르게 이렇게 잊어 버린다.

비단 술뿐만이 아닐것이다. 직업과 같이 매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제외하고는 그저 편리한대로 따라갈려고 한다.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고 사는 것만큼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은 없는데도 말이다.
이유야 어찌됬던 나야 내가 즐기자고 한 일이니까 그로 인해 손해는 당연한 일일 테지만,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은 무슨 죄일까? 물론 유혹에 넘어간 사람도 일말의 책임은 피할 수 없지만 나의 제안으로 인해 아니 겪어도 될 일을 겪게된다면?


의지가 약한 사람은 이렇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야 이런거 저런거 다 따지면서 세상을 어떻게 사냐? 놀때는 놀고 일할때는 또 빡시게 일하며 되는거지" 이렇게 말을 하곤  하지만 이건 다른사람의 인생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 인것 같다. 상대방이 내일 무슨일을 해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이처럼 단순히 유혹을 건네는 것들은, 나의 인생에 있어 독기 되기 쉽상이다.

나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것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 아닐수 없다.
그만큼 유혹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왜냐면 다른 사람에게서 내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면, 그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하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듯이 나의 본분을 지키는 한도내에서, 때로는 상대방의 의도에 따라가 주는 것도 현명한 처신이 아닐가 생각한다.

다만 유혹을 당하더라도 현명한게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때로는 너무 계산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사람은 도리어 매력적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기때문이다. 너무나 속보이는 의도된 행동은 주변 분위기를 망치고 불쾌하게 하지만, 분위기에 맞게 멋지게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호감을 느끼니깐 말이다.



유머---컬투 UCC 베스트사연들(※주의:배꼽빠짐)

기분이 꿀꿀하거나, 울적할때, 또는 심심할때 보시면 활력소가 될것 같네요.
바로 동영상 투척합니다.ㅎㅎㅎ
주위 : 배꼽 조심!! 






재밌게 보셨나요? ㅋㅋㅋ
웃으면서 살자구요~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나의 이야기---내가 글을 쓰는 이유...


사람들은 저에게 말합니다.."아르헨님 글을 참 잘쓰세요."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땐 참 쑥쓰럽습니다. 사실 예전에 상조회에서 활동할때 악플을 거의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누가 비판이나 악플 또는 의견을 제시해 주길 바란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제가 너무 고지식한것인지, 그렇게 앞,뒤 꽉 막힌 사람도 아닌데, 언쟁을 벌이지 않으니 제멋에 그렇게 나대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지만 말입니다..ㅡ.,ㅡ;;

저는 글을 쓰면서 항상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혹여 제가 쓴 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는지 조심조심 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저의 마음에서 걸러진 경험이나 생각들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가 쓴 글을 읽고 그 글 내용에 공감하고,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것도 사실입니다.또 전에도 말했지만 제 글의 내용은 저의 오랜 경험들의 산물으로서 다소 저의 성격이 강할수도 있겠습니다.
제 생각이지만,현대를 살면서 가장 외로운 건 역시 마음을 나눌수 없는것, 머물 곳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구에게 내 글을 자랑함도 아니요, 그렇다고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래서도 아닙니다. 그저 언제나 원하면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이란 공간을 통해 변화하는 나의 생각이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잊어버리니깐 말입니다.
블로그 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그래서 이 공간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 하는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다소 작위적일수도 있으나 저의 글을 읽어 본 사람은 곧 저의 단면을 본 것과 다름없습니다. 때론 숨기고 싶은것도 있고, 비밀처럼 간직하고 싶은것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므로 제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논쟁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 할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보아주시면 됩니다.
가끔 필요한 정보든지, 자그마한 위로를 받으시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제가 쓰는 이런저런 주저리 글이라 해야 누구에게 특별히 글을 쓰는 방식이나 형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서 어쩌면 무슨 의미를 갖고 썼는지,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지, 또 주제도 명확하지 않아 난해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제가 쓰는 글은 남에게 과시하거나 칭찬이나 듣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살면서 은연 중 몸에 스며들어 자신과 어울리는 생각이나 행동 또는 느낌으로 형식화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어울리지 않거나 맞지 않으면 피하면 되지 굳이 다툴 필요까지는 없음에도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고, 욕설을 하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래도록 친분을 유지하기란 힘듭니다.

이처럼 글도 남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측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생각을 안해? "는 정말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대하면 왠지 나의 이야기인양 포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생각을 접하면 비판하기 보다는 그 생각들로 인해 오히려 나의 사고의 폭이 그만큼 커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야 말로 유연하고 다양한 것들을 나의 것으로 끌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때론 이러한 것들이 정보이며, 신지식이 되지 않을까요?

이처럼 글을 쓰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나 주제를 찾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부쩍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눠도 막힘이나 주저함 없이 소통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저는 글을 쓰므로써 나를 정체시키지 않고 조금씩 성장시켜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내 자신 속의 진정한 주인인 자아를 위해서 말입니다.



나의 이야기---사실 나는...

며칠동안 런던올림픽 보는 맛에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었는데, 다시 올림픽이 끝난 지금 갑자기 급우울 해지네요.ㅎㅎ 아르헨티나 불경기는 언제까지 이어질지...기약없는 희망에 또 급우울 ㅡ.,ㅡ;; "마음 편하게 먹어야지" 하면서도 머리도 복잡하고, 이틈을 놓칠세라 또 수많은 잡념이 머리속에 맴맴 돌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또 반성하고 마음을 가라앉으려 해야겠습니다..

여지것 아르헨티나교민들은 저를 그냥 '아르헨20년' 으로 또는 상조회에서 글 좀 쓰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생각하시거나, 가끔 독설을 하는 사람으로 상상하시나 사실  교민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특별한 존재는 아니지요. 가끔 저와 처음 대면하시는 분들은 저에게 다가가기 힘들어 하시는것에도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 좀 하려합니다.
사실 나는 너무나 가식적인 사람입니다.
솔직히 남보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남이 나를 재치고 잘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행여 친목모임이나 만남의 자리에서도 내가 없을때, 나를 배제하고 이루어진 일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게 행동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안 그런 척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나를 불러줬으면 하고, 싫은 척 하면서도 은근하게 뒤로는 챙겨줬음 합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가슴을 활짝 펴고 사는 일상이기보다는 공연히 움츠려드는 일상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솔직히 무엇을 숨기려는 마음보다는 내가 가진것이 너무 초라하기에, 차라리 "남이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서입니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내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관대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고 잘못해도 밤새도록 잠조자 못잘 정도로 마음에 담아 놓고 삽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일이 아니고 흉이 될만한 일도 아니라고해도 스스로 자책을 많이 합니다. 또한 남의 시선이 두려워 나서서 무엇을 주장하기보다는 따라가는 경우를 선택합니다.
솔직히 이런 내성적인 성격은 제 자신이 고치려 부단히 노력을 하지만 '제 성격이니' 하고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죄지은 것도 없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숨죽이며 사는 날이 많습니다.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형제에게 원하는 것만큼 풍족하게 채워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그런지도 모릅니다.
항상 돈이 부족해도 그럭저럭 채워가면서 사는데, 항상 돈타령하다보니 언제부터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아내의 두툼해진 손가락 마디, 자식이 원하는것을 해주지 못할때,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 같은 마음은 내 가슴에 못이 되어 찌르곤 합니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지은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부모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내가 필요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아니었으면 입지 않아도 될 손해를 감당했을 것도 압니다.
때로는 이익이나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손해나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두 모자란 내 삶을 충족하게 채워주는 소중한 존재였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끼는 지금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사실 나는 무척이나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대놓고 털어놓지 못하고 마음에 담고 삽니다.
그리고는 마음의 분노를 삭이지 못해 혼자서 속만 태웁니다.
머리에는 수많은 의견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 생각으로만 머뭅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다 시기를 놓치고 난 뒤, 공연히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후회합니다.


사실 나는 이렇게 단점이 많습니다. 다른사람들도 누구나 자신만의 단점을 갖고 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런것들에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면 정말 밑빠진 항아리처럼 끝도 없이 부족함을 느끼므로 나는 때로는 미친 듯 삽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성을 잃어 버릴정도는 아닙니다.
이젠 무엇에 미칠정도로 빠져 삶에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2012년 8월 7일 화요일

사회 돋보기--- 체조로 세계를 감동시킨 양학선


지금 고국은 어제 벌어진  체조경기 남자 도마부분에서 아름다운 청년 양학선(20세)선수가  한국 체조사상 첫번째 금메달을 획득한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는데요.. 저도 경기를 보았지만 감동 그 자체입니다. 2차시기 완벽한 착지에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내고, 다른나라 체조선수,코치 모두 축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제 일처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올림픽 참가 52년만에 체조의 불모지에서 첫금메달이 나왔는데요..비로소 그동안 은메달2개 동메달 2개에 그친 대한민국 체조사에 한획을 그었습니다.



원래 체조강국은 구소련과, 유럽에서 전부 휩쓸다 싶피해서 이번에 양학선선수의 금메달은 다른 무엇보다 값진 메달입니다. 금메달을 딴것도 감동이지만 양학선선수의 비닐하우스 집에 또 한번 폭풍감동을 받습니다.





한국 체조의 역사를 새로 쓴 양학선은 어려운 가정환경과 지극한 효심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평생 미장일을 해온 아버지 양관권씨(53)와 공장일을 해온 어머니 기숙향씨(43)가 비닐하우스에 살면서도 양 선수를 긍정적인 인재로 잘 키워낸 사연해 감동받고 있다고 하는데요...이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양학선1이란 신기술로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긴 양선수의 불굴의 투지와 열정에 또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올림픽전 인터뷰마다 "금메달을 따서 부모님께 번듯한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는 희망을 감추지 않았던 양학선선수는 이제 그가 그토록 원하던 금메달을 따내며 부모님을 위한 꿈에 한걸음 다가 갈수 있겠네요. 선수촌에서 받은 월 80만원도 집으로 꼬박꼬박 보낸 효자라고 하네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니 양선수가 더 커 보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과 해외동포가 함께 응원합니다. 양학선선수 화이팅!!!



소소한 음악이야기---런던올림픽 응원가 [김연우 '그곳에 올라']

요즘 올림픽때문에 가슴 조이고 감격에 또 감동에..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게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선수들 모두 열심히 그동안 땀과 노력과 열정에 메달을 떠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스트레스가 모두 한방에 날라 갑니다.ㅋㅋ
그래서 준비 했습니다. 올림픽 응원가...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 입니다.
여러 올림픽 응원가가 있지만 그중 김연우의 '그곳에 올라'를 듣고 있으면 또 한번 감격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금메달 획득시 울려퍼지는 노래...노래,목소리가 어울려져 그냥 감동의 스나미 입니다.이노래도 핸드폰 벨소리로 저장 GOGO~
얼마나 울려 퍼질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아으므로 다시 기대해 봅니다.
그럼 볼륨 UP↑↑




김연우-그곳에 올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당당히 더 높이 올라
언제나 바래 온 꿈이 
이제 모두 이루어진다
모두가 그대를 향해
모두가 그대를 위해
소리쳐 한 마음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늘 힘든 시간 숨죽여 함께 애태우던
그 많은 순간 소중히 이 가슴에 담아

수 많은 시련을 딛고
수 없이 눈물을 닦고
드디어 맞이한 시간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당당히 더 높이 올라
언제나 그려온 순간
이젠 그 곳에 올라

한곡더~~



Butterfly                                                Loveholics|국가대표 OST.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 
누에속에 감춰진 너를 못 봐 
나는 알아 내겐 보여 
그토록 찬란한 너의 날개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꺽여버린 꽃처럼 아플 때도 

쓰러진 나무처럼 초라해도 

너를 믿어 나를 믿어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어 

심장의 소리를 느껴봐 

힘겹게 접어놓았던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벅차도록 아름다운 그대여 

이 세상이 차갑게 등을 보여도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2012년 7월 28일 토요일

소소한 음악이야기---싸이 '강남 스타일' & hyuna version



오래만에 싸이 PSY  가 6집 앨범 '강남 스타일'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고국뿐만 아니라 해외 K-POP 팬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네요..ㅋㅋ
1집때부터 흥겨운 싸이만의 음악을 선보여왔는데요..이번 앨범도 실망을 안시키네요.ㅎㅎ
노래도 노래지만 강남스타일은 뮤비가 압권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말춤으로 무장하고 나왔는데 지금 듣고 있는 저도 신나게 포스팅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국 클럽이나 길거리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쏟아져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코믹춤을 저도 아르헨티나 클럽에서 한번 춰 볼까요? 미친놈 소릴 들을까요? ㅋㅋ아무래도 말춤과 섹시춤을 배워 한번 시도해봐야 겠습니다. ㅋㅋ
핸드폰에 저장해둬서 우울할때나 기분이 다운 됬을때 들으면 완전 신나고 잼있을것 같습니다.
저희 종업원에게도 보여 줘봤는데 웃겨 미치겠다네요..^^;;
우리 모두 즐겁게 살자구요..!!!!!!
복고풍 댄스 강남 스타일 고고고!!!






↑Gangnam style hyuna version



보너스로 신나는 클럽음악 추가요....




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책리뷰]---탐욕의 시대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원제 L'empire De La Honte (수치의 제국)
탐욕의 시대....장 지글러


며칠전 노동의 배신라는 책을 읽고 저빈민층에 대해 이야기를 포스팅 했었는데요.. 이 탐욕의 시대도  같은 맥락의 책이라고 보여집니다. 저는 노동자의 대변인도 아니고 , 그렇다고  가진자의 편을 드는 사람도 아닌 지극히 저의 객관적 관점에서 제가 받은 느낌과  저의 생각을 서평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야기에 앞서 "왜 수많은 잘사는 선진국들은 최극빈층 나라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 해 보셨을 것입니다. 기아로 굶어죽는 아프리카 난민들, 아동 노예착취며 각종범죄에 가담하며, 정말로 하찮은 삶을 살아야만 할까요? 세상이 정말 불공평 하지 않나요? 이책에서는 '왜 그럴수 밖에 없나'를 적날하게 보여줍니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지 알수 있는지 바로 감이 올 것입니다. 신흥 봉건세력의 가진자들..저자는 세계의 부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데도 빈곤국이 더 가난해 지는 이유를 분석합니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며 겪었던 경험과 통계와 자료를 제시하면서 '한 해 생산된  부의 절반 이상을 다국적 기업들이 장악하면서 재화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다국적 기업들을 새로운 봉건 지배세력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빈곤국이 부채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석도 제시하는데요...빈곤국은 국민총생산 대부분을 부채 원금뿐만 아니라 엄청난 이자 지급에 사용하므로 사회에 투자할 예산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빈민국에선 매년 5세 미만의 어린이 중 1천만 명 이상이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행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고 ,이 희생자 중 절반은 최빈국 6개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쪽에서 매일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을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태생적으로 그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 되는가? 다국적 기업의 속임수' 라는 주제로 누가 세계의 빈곤을 주도하는지,인간의 행복과 존엄성이 무시되고,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왜 그렇게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이 책은 '관용'으로 포장하고 이들이 부를 쌓기 위해 누구를 어떻게  착취하는가에 대한 보고서 입니다. 이들의 횡포는 IMF , IBRD, WTO, UN 등 세계 기구의 무기력과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권력층의 부패와도 서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실타래와 같습니다. 
소설같은 내용과 흥미진진하고 손을 땔수 없게 하는 책이지만 정말 비극적인건  결코 픽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읽는도중 얼마나 분노와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이 순간 자유를 누리면서도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제자신에게 반성도 주는 참 묘한 책이네요.
자기 배부르자고 남의 것이 무시당하고 모두 훔쳐와도 되겠습니까? 
이책을 보면서 전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이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함께 반인권적인 행태에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는 지금 탐욕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남겨주고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느끼게 해주고 분노하며 재밌게 읽었던 책입니다.